AI 크리에이터 킵콴
오간 이야기

이날의 연사는 디즈니와 외교부, 국가유산청, CJ와 협업해 온 AI 크리에이터 킵콴 님이었습니다. 닉네임의 유래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SM C&C 사업전략팀에서 12년간 중장기 전략을 짜다 2021년 AI를 처음 만났는데, 매력적이면서도 언젠가 이것이 자신을 잡아먹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 윤석관 앞에 자신을 지키고 싶다는 뜻으로 Keep을 붙여 킵콴이 됐습니다. 일종의 선언문처럼 지니고 다니는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AI가 자기 판이라고 느낀 순간은 회사의 5년, 10년 뒤 먹거리를 리서치하던 중이었습니다. 설득하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친구인지 알아보자. 그렇게 퇴근 후와 주말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쓴 한문 소설을 텍스트로 두고 이미지로 만들어봤는데, 미드저니 베타 시절이라 결과물은 조악했습니다. 그래도 텍스트로 색이 입혀진 무언가가 나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콘텐츠 사업에서 분명 큰 무기가 되겠다는 확신이 그때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퇴사를 결심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회사의 신사업으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재밌었고 하나씩 만들어지는 걸 보며 자유를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12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로 했지만 바로 나오지는 않고 1년의 기간을 두고 통과하면 퇴사하기로 스스로를 테스트했습니다.
테스트는 교육자와 아티스트 두 갈래로 나눴습니다. 경영학을 배우고 숫자와 피피티를 다루던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여겼고 AI를 잘 아는 것을 넘어 AI로 인간을 지키는 방법을 알리는 교육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티스트로서는 내 이름으로 전시를 열어보자, 교육자로서는 오프라인 수업을 만들어 몇 명 이상 모으면 해보자 하는 식으로 단계별 목표를 세워 하나씩 통과했습니다. 전략팀 출신답게 자신의 퇴사마저 테스트로 설계한 셈입니다.
프리랜서 3년에서 4년 차의 가장 큰 장점을 묻자 답은 자유였습니다. 가장 큰 단점도 자유였습니다. 틀이 사라진 만큼 주말에도 새벽에도 일하게 되니, 시간의 자유가 오히려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만든 것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것도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요즘 스타트업에서 AI를 쓰지 말고 AI로 돈을 벌라는 말이 화두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처음 협업한 곳은 디즈니였습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X에서 시작해 여러 작업을 올리고 해외 전시를 많이 하다 보니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왜 나를 알게 됐을까를 늘 회고한다는 그가 찾은 답은 스토리였습니다. 명확한 스토리, 명확한 콘셉트, 명확한 세계관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작업한 점을 봤을 거라는 것입니다. 한국 전통을 축에 두고 여러 요소와 믹스하는 콘텐츠를 만들며 한국 전통 하면 그가 떠오르도록 자신을 브랜딩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쌓아왔습니다. 그래서 강의에서도 AI로 작업하기 전에 자기 안의 세계관부터 찾으라고 늘 강조합니다.
한국 전통이라는 주제도 일상에서 찾았습니다. 뉴욕 출장 중 한복을 파는 매장을 봤는데 쇼윈도의 한복 밑에 Chinese kimono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나도 우리 전통을 잘 모르는데 외국인은 얼마나 모를까 싶어 이를 알릴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AI로 한복을 만들어보니 AI조차 한복을 한복으로 알지 못하고 기모노나 청나라 의상을 생성했습니다. 그래서 얘도 가르치고 나도 배우자며 학습을 시작했고 지금도 고증이 맞는지 늘 체크하며 작업합니다.
그래서 AI를 켜기 전에 스케치부터 합니다. 어떤 툴을 쓸지가 아니라 머릿속에 뭘 떠올렸는지부터 종이에 그리고 그 안에서 옷 매는 방식이나 전통 패턴 같은 고증을 하나하나 찾습니다. 수업도 그렇게 해서 대학 한 학기 16주 중 처음 6주는 종이와 연필로만 진행합니다. 다들 프롬프트가 어디 있지, 뭘 만들지만 생각하다 보니 이미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꺼낼 생각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기업처럼 보고 매년 KPI를 세웁니다. 중장기 전략은 이미지와 영상을 넘어 실물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의 주제는 입는 것이어서 화보에서 옷감으로, 실크 스크린으로 단계를 밟아 마침내 훈민정음 해례본의 옛 자모를 기반으로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만들었고 11월 광화문 광장에서 AI로 디자인한 옷으로 런웨이를 열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단청 무늬를 촬영해 오방색 대신 네온 컬러로 바꾼 옷은 날이 따뜻해지면 검은 옷이 네온으로 드러납니다. 올해의 주제는 향이고 내년의 주제는 먹는 것이며 궁극적 목표는 세상에 없던 맛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직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도 체감한다고 했습니다. 전공도 기술과도 무관한 그가 어느 대기업의 HR 조직을 대상으로 AI 크리에이티브 강의를 했더니, 인사팀인데도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많아 인사에서 쓸 콘텐츠를 파이널 프로젝트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엔 마케팅팀에 도움을 청했을 일을 이제 내부에서 다 해결합니다. 참석자에게 남긴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들 AI를 무언가를 생성하는 도구로 여기지만 자신에게 AI는 시간을 생성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8시간 걸릴 작업이 몇 분으로 줄면 남은 시간에 다른 걸 배울 수 있어서 손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 도예와 분재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소모임에서는 AI 결과물을 보고 바로 손절하게 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두고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여러 조에서 비슷하게 모였는데 가장 많이 나온 건 어설픈 현실 모사였습니다. 현실에 없는 걸 AI로 만들면 창작으로 느껴지지만 현실을 흉내 내려다 실패하면 불쾌한 골짜기에 빠집니다. 일관성도 컸습니다. 시안은 그럴듯한데 2차, 3차 수정으로 가면 얼굴과 본질이 사라져 포토샵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한글 폰트가 깨지거나 검수 없이 숫자 하나 안 고친 채 내보내는 것도 꼽혔습니다. 흥미롭게도 AI 티가 난다는 것 자체는 이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나만의 한 끗은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찍은 사진이나 직접 그린 그림 한 장을 얹으면 신뢰가 생긴다는 이야기, 깃허브에 널린 스킬을 다 지우고 본인만의 스킬을 만들었을 때 결과가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 자기 말투를 학습시켜 인간미를 살렸다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한 조는 검수하고 스토리라인을 짜는 일처럼 AI 결과물에 30퍼센트의 품은 아직 사람이 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딸깍 한 번으로 끝나는 건 없고 딸깍을 삼천 번 갈아 넣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스토리폴리오라는 킵콴 님의 말처럼, 남는 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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