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신기술
오간 이야기

그동안 엔지니어와 창업자를 주로 모셔온 커뮤니티가 이번엔 가장 낯선 손님을 무대에 세웠습니다. 초대의 계기는 래퍼 팔로알토 님이 팟캐스트에서 던진 한마디였습니다. AI는 이미 인간보다 음악을 잘 만든다, Suno만 써봐도 알 수 있으니 굳이 안 쓸 이유가 없다. 예술성을 지키려 AI를 멀리할 법한 아티스트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 셈입니다.
그가 덧붙인 단서가 핵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음악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 전후의 서사까지 함께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티스트가 어떤 경험과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고 발매 후 팬과 어떻게 이어가는지가 모두 콘텐츠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기술적인 제작은 AI에 더 맡기되 서사와 스토리텔링에는 인간이 더 깊이 개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소프트웨어도 사정이 같습니다. AI가 거의 다 만들어주니 제품 만들기는 쉬워졌는데 마케팅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무대에서 나온 첫 질문은 창조의 본질을 겨냥했습니다. AI가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내는 모델이라면, 인간이 재즈를 창조하지 않았어도 Suno가 재즈를 만들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AI는 인류가 쌓아온 것을 학습해 인간보다 빠르게 결과를 낼 뿐이므로, 인간이 재즈를 탄생시키지 않았다면 아무리 프롬프트를 쳐도 재즈는 나오지 않습니다. 뒤집으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처음 만들어내는 영역에는 여전히 인간의 자리가 남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창조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했습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음악가든 디자이너든 개발자든, 어릴 때나 지금 영감을 받은 무언가가 자기 식대로 재해석되는 것입니다. 창조는 없던 것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습득한 것을 얼마나 진화시키고 크리에이티브하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본인도 누군가의 음악을 들을 때, 그 뿌리가 어디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느껴질 때 더 큰 감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AI 코딩으로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구독하던 시대에서 직접 만드는 시대로 넘어가면 결과물의 희소가치는 떨어집니다. 음악도 즉석에서 원하는 곡을 만들어 듣는 시대가 오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 변화를 원시시대로의 회귀에 비유했습니다. 예전에는 브랜드와 기업이 만들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각자 직접 창조할 수 있게 됐고 인간에게는 누구나 창조의 본능이 있으니 그것이 발현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내놓은 답은 균형이었습니다. 본인도 Suno를 쓰고 프롬프트를 잘 치면 브라스도 기타도 스트링도 생동감 있게 나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사운드를 쓸 수 있게 될수록 오히려 진짜 연주자가 빛을 발하고 너무 완벽하지 않은 것과 진심이 담긴 것에 사람들이 더 감동하는 시대가 온다고 봤습니다. 결과물의 공급이 무한대에 가까워질 때 시장은 완벽함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에 값을 매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비슷한 퀄리티를 만들 수 있다면 아티스트의 해자는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매력과 캐릭터, 그리고 행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력이 뛰어난데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매력의 부재이거나 대중이 서사에 몰입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 든 카니예 웨스트의 경우, 사람들이 몰입하는 건 한계를 계속 깨온 파이오니어로서의 행보 때문이고 그 축적된 서사가 있기에 잘못된 발언조차 한 번 더 곱씹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음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테슬라 뒤에는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이 있고 스티브 잡스가 창고에서 시작해 회사에서 쫓겨났다 돌아온 서사는 애플 제품의 마케팅에 무시 못 할 힘이 됐습니다. 제품과 기술의 상향 평준화가 빨라질수록 창업자의 서사와 캐릭터, 일관된 행보가 대체하기 어려운 자산이 됩니다.
그가 AI를 대하는 방식도 눈에 띄었습니다. Suno에 최대한 의존하지 않으려 의식하며 쓴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밌어서 음악을 하는 것이지, 쉽게 만들어 빨리 돈을 벌려는 것이라면 진작 다 맡겼을 거라는 이유였습니다. 실제 활용은 영리했습니다. 힙합은 옛 음악을 샘플링하기 마련인데 원곡을 쓰려면 샘플 클리어 비용과 허락이 필요합니다. 대신 특정 시대의 사운드를 Suno로 그럴싸하게 만들어 스템을 받아 재조합하면 비용을 아끼고 원하는 사운드도 얻습니다.
최근 합작 앨범에서도 직접 연주한 것을 Suno에 입력해 여러 버전을 뽑은 뒤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썼습니다. 창조의 과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달라진 것입니다. 인디펜던트 활동에서는 AI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도 했습니다. 음원 자료를 유통사에 보내고 굿즈 배송용 엑셀을 정리하는 잡무. 창작의 핵심에서는 의존을 줄이고 반복적인 운영에서는 적극 활용합니다. 그게 그의 구분이었습니다.
그의 커리어는 특이한 궤적입니다. 레이블을 직접 차려 십 년을 운영하고 소속 아티스트를 거쳐 지금은 인디펜던트가 됐습니다.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산부터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다 해봤기에,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이었습니다. AI가 매니저 역할을 대신해주니 인디펜던트에 타이밍이 좋다는 말에, 좀만 더 늦게 태어날걸 그랬다며 웃었습니다.
가장 실무적인 이야기는 글로벌 전략에서 나왔습니다. 케이 힙합이 세계로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너무 글로벌하게 나가려 애쓰지 않는 편이 좋다는 직관과 반대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힙합은 미국 흑인들이 만든 문화라 그들을 따라 하면 그들이 보기에 우스울 뿐이고 그들이 더 잘하는 걸로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사는 자기 본연의 것, 자라온 환경에서 나오는 것을 합니다. 케이팝의 성공으로 한국적인 것을 보여줄 때 해외가 오히려 더 재밌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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