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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이미 지식 노동은 끝났다

오간 이야기

미국에선 이미 지식 노동은 끝났다

이날의 연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Jeewon Kim Serrato 님이었습니다. 열두 살에 이민을 가 버클리에서 학부와 로스쿨을 마쳤고 21년간 미국에서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디지털 전환을 다뤄왔습니다. 국토안보부에서 8년간 데이터 프라이버시 부문을 이끌었고 자산 4조 달러 규모 금융기관의 최고개인정보책임자를 지냈으며 메타와 이베이, 소니, 시티은행의 데이터 전략을 자문했습니다.

올해 2월 대형 로펌 파트너 자리를 떠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마흔일곱이 되도록 제로 투 원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천 번 자문가의 자리에는 앉아봤습니다. 정작 창업자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중산층을 위한 AI 네이티브 금융 서비스 스타트업을 직접 세워 운영합니다.

창업이 시작된 장면은 지난해 봄이었습니다. 변호사를 돕는 리걸테크 AI를 보고 모든 변호사가 일자리를 잃고 자기 일도 안전하지 않겠다고 직감한 순간이었습니다. 그사이 친구 넷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베이는 600명, 인튜이트는 1,000명가량을 내보냈고 메타와 구글도 감원을 이어갑니다. AI를 핑계로 쓰는 면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사람이 잘려 나갑니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직업 연구를 인용하며 상위 40개에서 60개 직업이 이미 AI로 수행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회계사도 변호사도 심지어 의사도, 데이터를 받아 처리하고 분석해 추천을 내놓는 모든 일이 대상입니다. 20년 경력의 최고 변호사 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본인조차 전 세계의 지식을 활용하는 AI와는 경쟁할 수 없고 앞으로 2년에서 5년 안에 지식 노동자가 필요 없어질 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내린 처방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계속 피벗하고 적응하거나, 아니면 자기 회사와 자기 길의 주인이 되거나.

본인을 실리콘밸리 인사이더라고 했습니다. 버클리 동창은 대부분 창업자나 VC이고 15년 전 자율주행차를 자문하던 시절부터 AI를 다뤄왔기 때문입니다. AI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달라진 것은 이제 세계 최대 기업만이 아니라 모두가 쓴다는 점이라며 실리콘밸리를 세상보다 몇 년 빨리 변화를 감지하는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문화적 간극이었습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는 AI 비관론이 짙고 미국은 AI를 가장 회의적으로 보는 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돈의 흐름에 대한 진단은 냉정했습니다. 전 세계 벤처 자금의 80퍼센트가 실리콘밸리에 있고 그 돈의 80퍼센트가 다시 실리콘밸리 창업자에게 돌아갑니다. 제대로 된 창업자 서사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냅킨에 적은 구상만으로도 투자 제안이 옵니다. 다만 이 거품이 닷컴 버블보다 더 크고 빠르다고도 짚었습니다. AI 기술이 이미 정치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연방과 주의 AI 정책이 완전히 다른데, 프라이버시와 AI 규제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같은 블루 스테이트가 주도합니다.

미국 진출과 투자 유치의 타이밍을 묻자 지금, 오늘 시작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다만 이 창은 1년에서 2년이면 닫힐 수 있고 이미 닫히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이모나 사촌 같은 먼 지인까지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연락해 연결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장 규모에 대한 관점도 명확했습니다. 캘리포니아 하나만 잡아도 한국보다 크고 그런 주가 50개인 것이 미국입니다.

가장 강조한 건 현지 가이드였습니다. 부산의 호텔 헬스장에서 실내 슬리퍼가 필요하다는 걸 매년 한국에 오는 자신도 몰랐다는 사소한 일화를 들었습니다. 반대로 한국 창업자가 실리콘밸리에 가면 매일 영문 모를 일이 벌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문화를 이해하는 공동창업자나 현지 친구가 진짜 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는 펀드레이징을 하기엔 너무 붐비니 다른 거점도 보라는 조언이 이어졌습니다. 꺼낸 대안은 뉴멕시코였습니다. 석유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국부펀드를 가졌고 국립 연구소가 셋인 딥테크의 땅입니다. 실리콘밸리 자금의 90퍼센트가 B2B SaaS를 만드는 스탠퍼드 MBA에게 가는 반면, 로보틱스나 피지컬 AI, 에너지 인프라, 물류를 하는 팀이라면 앨버커키가 더 맞는 짝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동질성에는 명암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결정하면 안전한 베팅에 머물고 충분한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 집단적 사고와 공동체 의식을 강점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리콘밸리로 이주할 게 아니라면 지금 발 딛고 선 자리에서 함께 자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만난 젊은 창업자 15명에게 각자 창업하지 말고 열다섯 명이 한 회사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며 브레인스토밍까지 했다고 합니다.

소통 방식의 차이도 짚었습니다. 미국 피치덱이 우리가 이기는 이유라는 결론부터 시작하는 건 배경이 제각각이라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동질적인 인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맥락이 있어 결론을 뒤로 미룹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두괄식 소통을 의식적으로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만든 The K University라는 이름 자체가, 프라이버시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결과라고 했습니다.

The K University의 핵심 개념은 Breakthrough입니다. 지난 2년간 미국의 VC가 공통으로 읽고 언어로 삼은 책 Pattern Breakers를 소개하며 돌파의 조건을 변곡점과 통찰로 정리했습니다. 변곡점은 AI나 소셜미디어, 지정학처럼 외부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입니다. 통찰은 그 변화를 잡아챌 창업자만의 고유한 것입니다. 답답해한 건 자기만이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것 대신 손쉬운 길을 택하는 창업자들이었습니다.

유니콘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도 냉정하게 구분했습니다. 월 300만 원을 버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에는 VC가 투자하지 않고 유니콘은 100개 나라에서 10억 달러로 클 수 있는 회사입니다. 회사가 그만큼 크지 못하면 VC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게 당연하니, 답이 없다고 실망할 게 아니라 자신이 타깃이 아닐 뿐임을 알라고 했습니다. 마무리는 세계 최대 기업들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비즈니스는 결국 행복을 파는 일이고 미션을 이것이 어떻게 행복을 늘리는가로 프레이밍할 수 있다면 돈도 고객도 따라옵니다. 한국의 성공이 계단식 논을 서로 도와 일군 공동체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들며 옆 창업자를 자금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함께 자랄 동료로 볼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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