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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피어나고 있는가

오간 이야기

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피어나고 있는가

AB180 남성필 대표님은 하루의 90퍼센트를 AI와 함께 보내면서도 적잖은 우울감을 느끼던 차에 Claude Blue 글을 보고 이 행사의 취지에 공감했다고 했습니다. 무대에서 남긴 짧은 인사말은 영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 의지는 영감에서 오는데, 영감의 원천은 결국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이 클로드와 코덱스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것도, 미국에서 만난 선배 창업가가 앱의 모든 것을 AI로 바꿔 나가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동건 대표님은 2012년, 스물일곱에 마이리얼트립을 창업했습니다. 아이폰을 누구보다 빨리 썼고 모바일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큰 오판을 했습니다. 여행은 기본 결제가 수백만 원, 가족 여행이면 천만 원을 넘는데 그 큰 금액이 모바일에서 결제될 리 없다고 봤습니다. 여행은 PC에서 엑셀 켜놓고 짜는 것이라 판단해 4년 넘게 PC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문제는 팀이 작아 모바일 앱밖에 못 만들던 후발 주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 이유로 모바일에 올인했고 10개월 만에 4년 된 마이리얼트립을 따라잡았습니다. 이동건 대표님은 그때의 패착을 대표로서의 상상력이 비루했다고 표현했고 그래서 다음 파도가 오면 가장 파괴적이고 크게 상상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파도는 2022년 말에 왔습니다. GPT 3.5를 본 순간 확신했고 발표 48시간 만에 주말에 모여 실서비스를 냈습니다. 성능도 보안 검토도 부족하다는 우려에는 모르겠고 그냥 나가자고 밀어붙였습니다. 다음 날 9시 뉴스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연락이 왔지만 3, 4일이 지나자 트래픽이 썰물처럼 빠졌습니다. 여행은 고관여 의사결정이라, 할루시네이션이 심하던 시기에 AI 말만 듣고 일정을 다 맡기긴 무리였습니다. 그 이유를 기능을 하나 붙였을 뿐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고했습니다.

그 회고 이후 방향을 틀어,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실행 구조와 조직 구조를 바꾸는 데 집중했습니다. 2024년에는 모든 구성원이 AI를 다루게 만드는 교육 조직 AI 랩을 세우고 고객센터 자회사의 사명과 미션을 AI 혁신으로 바꿨습니다. 2025년에는 팀마다 한 명씩 AI 챔피언을 두어 영향력이 팀 안에서 자연스럽게 퍼지게 했습니다. 같은 해 iOS와 안드로이드, 백엔드, 프런트엔드로 나뉘던 직군을 하나로 합치고 디자인과 PM 타이틀도 없애서, 모두 프로덕트 엔지니어라는 단일 직함으로 통합했습니다.

그가 정의하는 AI 네이티브 조직은 세 가지였습니다. AI 없이는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 조직, 소수정예로 더 큰 임팩트를 내는 조직, 그리고 AWS 장애가 아니라 Claude 장애가 나면 멈추는 조직입니다. 마지막 조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서비스는 AWS가 멈추면 함께 멈추는데, 클로드가 멈춰야 멈추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게 진짜 AI 네이티브의 지표라는 것입니다.

평가 체계도 바뀌었습니다. 토큰 사용량이나 접속 빈도, AI 사이드 프로젝트 개수는 더 이상 보지 않습니다. 대신 공헌이익과 확정률, 전환율처럼 AI 이전에도 중요하던 핵심 지표를 AI로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봅니다. 리터러시 단계를 넘어서면 원래 중요하던 숫자로 돌아온다는 판단입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실제로 돌아가는 사례 일곱 개였습니다. 조건을 넣으면 최저가 항공권을 찾아주는 LuckyGlide는 코딩 경험 없는 마케팅 실장님이 만들었고 슬랙에서 대화하듯 기업 출장을 예약하고 ERP까지 연동되는 MRT Biz는 이동건 대표님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습니다. 커뮤니티에 쌓인 맛집 글을 AI가 큐레이션하고 번역하고 태깅해 240개 도시 2,081개 리뷰를 검색하게 한 Korean Foodies도 대표님이 만들었고 근태 솔루션은 피플팀이, 동행매칭 캘린더는 사업개발 매니저가 각각 만들었습니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원칙은 하나였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과 문제를 푸는 사람이 분리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초기 AI 랩은 다른 팀의 요청을 대신 만들어주는 구조였는데 외주 납품과 같아졌습니다. HR팀이 근태 솔루션을 고쳐 달라고 하면 AI 랩이 근태 관리부터 이해해야 했고 정책이 바뀔 때마다 다시 가져가야 하니 옛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AI 랩은 대신 만들어주는 팀에서 직접 만들 수 있게 돕는 교육 팀으로 바뀌었습니다. 인식한 사람이 못 푸는 이유가 개발을 몰라서, AI를 몰라서, 토큰 값이 비싸서라면 그 장벽을 없애주는 게 조직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AX 전환의 병목이 뭐였냐는 질문에 이동건 대표님은 대표가 병목인 경우가 많다고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거꾸로 대표가 가장 열심히 하고 솔선수범하면 크게 어려울 게 없다고 했습니다. 코드 신뢰 문제도 나왔습니다. 백엔드 엔지니어가 프런트를 맡으면서 내 코드를 못 믿어 처음부터 리뷰하느라 더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플랫폼 조직의 미션을, 잘못된 코드가 나가는 걸 사전에 막기보다 잘못 나갔을 때 1초 만에 복구하는 데 집중하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사전 차단이 아니라 사후 복구로 투자를 돌린 것입니다.

키노트 뒤에는 두 차례 라운드 테이블이 이어졌고 각 조장이 1분씩 인사이트를 공유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하네스였습니다. 생각에서 실행으로 넘어가는 구간을 우리가 어디까지 점유하느냐가, 프롬프트든 컨텍스트든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든 같은 출발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큰 반응을 얻은 건 LG생활건강에서 온 참가자의 정리였습니다. AI로 산출물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것이 비즈니스 성과나 고객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건 별개이고 오히려 검수 부하가 커져 자신이 빨간 펜 선생님이 된 느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핵심 역량은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왜 만드는지 정의하고 산출물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게 정렬하는 능력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AX 전담 조직 자체가 병목이 되지는 않는지, 자동화 이후 남은 리소스로 무엇을 할지 같은 질문이 오갔습니다. 시니어의 재정의를 다룬 테이블에서는 직무 통합이 계속될 것이고 그 안에서 각자의 숙제는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과 창의적 해법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리벨리온에서 온 참가자의 지금 토큰이 제일 싸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준 님이 오프닝에서 나눈 이야기가 이날의 분위기를 요약합니다. 최근 서울을 찾은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조언으로 대규모 컨퍼런스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미 약발 떨어진 내용이 정제되어 올라가고 거기서의 네트워킹은 깊이가 없으니, 차라리 커피숍에서 아무나 붙잡고 대화하는 편이 훨씬 인사이트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AI가 온라인의 정보를 너무 쉽게 소화하는 시대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온라인에 없는 것의 가치가 올라가고 머릿속에 있는 것을 나누고 다듬고 함께 발전시키는 일은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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