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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 중간 회고

오간 이야기

Bloom 중간 회고

연사가 없는 첫 모임이었습니다. 매주 기업 연사를 모시던 자리를 잠시 멈추고, 멤버들과 운영진이 지난 넉 달을 함께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20명 정도만 모시려 했는데 35명이 오셨습니다. 발표할 사람도 정해진 순서도 없이 그냥 모이자고 했는데 그렇게 모였습니다.

자리를 열겠다고 디스코드에 올린 순간부터 이미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한 분은 참석은 어렵지만 프로그램 만족도와 함께 소속감을 다뤄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기셨습니다. 스포츠 팬덤 연구를 인용하며, 팬들이 깊이 연결되는 이유는 경기 자체보다 그것을 매개로 관계를 만들고 자신도 그 공동체의 일부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Bloom의 다음 질문은 어떤 행사를 원하는가뿐 아니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자신을 Bloom의 일원이라고 느끼는가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이 만든 창작 협업 커뮤니티의 운영 구조를 정리해 보내주셨습니다.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느냐고 막연히 묻는 대신, 지금 필요한 일을 작은 단위로 열어두라는 원리였습니다.

당일에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한 멤버분이 본인이 참석하지 못한 행사들을 디스코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며 정리해 웹으로 만들어 공유해주셨습니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만들어 오신 것이었습니다.

인원이 많지 않아 한 명씩 이름과 소속, fun fact를 나눴는데 이 자기소개가 그날의 절반이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며 이 모임에서 알게 된 분을 통해 공모전 본선에 오른 분, 미국 로펌에서 SaaS를 만들며 개발자를 찾고 있는 분, 대기업에서 전략을 하다 퇴직해 프리랜서로 AX를 하고 계신 분, 벤처캐피탈에서 2022년 크립토 붕괴를 정면으로 겪은 분, 커뮤니티를 통해 미국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분, 그리고 한국 진출을 검토하며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분까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이야기는 옥외광고 회사에서 오신 분의 것이었습니다. 3일씩 걸려 쓰던 제안서를 AI가 30분 만에, 7년 차인 본인보다 잘 써버리는 걸 겪고 6월과 7월이 우울했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결과물을 보고 지적할 것을 찾으려 했는데 할 게 없었다고 했습니다. SI 업계 20년 차인 분도 결이 비슷했습니다. 연초에 AI에 부정적이었고 밤에 뒤척이다 링크드인을 보고 오게 되셨는데, 극복은 했지만 지금은 결국 혼자 일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루마 데이터로 지나온 넉 달을 함께 봤습니다. 4월에 시작해 8월까지 누적 신청 1만 1천여 건, 중복을 걷어낸 유니크로는 7천 명, 소속 기업은 4,600여 곳이었습니다. 행사는 스물여섯 번이었고 파운더와 C레벨, 헤드급이 1,000명가량, 재방문율은 40퍼센트였습니다. 월별로는 세 번에서 다섯 번, 여덟 번, 열 번으로 계속 늘었습니다. 계획한 것이 아니라 협업 기회가 생기고 다루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서 그렇게 됐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도 짚었습니다. 첫 행사에 2,057명이 신청했지만 사실 그 행사는 잘 안 됐습니다. 커뮤니티를 다녀본 적이 없어 두 시간 내내 강연으로 채웠는데, 오시는 분들은 강연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싶어서 온다는 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한 대표님이 신사옥 공간과 케이터링을 내어주셔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망했기 때문에 두 번째가 있었던 셈입니다.

데이터에서 흥미로웠던 건 빅테크가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아래 이름들이었습니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 엔터테인먼트 기업, 국방부에서도 오셨습니다. 개발자에게는 갈 수 있는 AI 커뮤니티가 그래도 있지만, 사업 쪽에 있는 사람에게 커뮤니티는 대개 명함을 주고받는 영업 자리입니다. 갈 데가 없어서 오신다는 뜻이었습니다.

본론은 조를 나눈 뒤였습니다. 솔직한 말들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연사와 발표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가장 기대하는 포맷은 라운드테이블이니 거기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세션과 어울림을 한 번에 가져가려면 연사를 어울림에 밀어 넣어야 하는데, 비싼 분들을 모셔오니 그분들 입장에서는 남을 이유가 없다는 진단도 함께였습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절대적으로 짧다는 지적, 조별 발표가 끝나면 다른 조 이야기를 물어볼 방법 없이 흩어진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결론은 투 트랙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연사와 하는 세션은 세션대로, 멤버들끼리 자생하는 자리는 그것대로 따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누가 Bloom인가였습니다. 디스코드에 가입하면 멤버인지, 한 번 오면 멤버인지, 어떤 기준으로 활동이 쌓이면 그때부터 Bloom인지. 지금 Bloom에는 함께 AI를 할 친구를 찾으러 온 사람,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러 온 사람, 그냥 관찰하고 싶은데 참여하라니 부담스러운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무엇을 중심에 둘지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의 답은 그날 밤에 나왔습니다. 자리가 파하고 11시가 넘은 시각, 한 분이 디스코드에 그럼 저도 오늘부터 블룸 멤버냐고 올리셨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준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답은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확인한 건 세 가지였습니다. 연사 섭외 없이도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멤버들도 직접 행사를 주관해보고 싶어 한다는 것, 다만 완전한 위임이 아니라 단계적인 위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답을 얻으러 갔는데 정확히는 질문을 얻어 왔습니다. 오디언스는 이미 충분히 좋았고, 문제는 그분들이 기여할 자리를 아직 만들어드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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