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척하는 3만 명 중 찐 가려내기
오간 이야기

기업 협력 없이 커뮤니티 멤버 두 분을 연사로 모신 자리였습니다. 한 분은 한국에서 SNS 자동화 서비스를 만들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LA로 50일을 다녀왔고 다른 한 분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월스트리트와 로펌을 거쳐 지금은 커리어 코치로 일합니다. 배경은 정반대인데 두 세션이 같은 결론에 도착했습니다.
첫 세션은 Mirr AI를 만드는 박규태 님이었습니다. 소상공인을 위한 SNS 마케팅 솔루션으로, 인스타그램 운영을 기획부터 제작과 관리까지 대신하는 AI 에이전트입니다. 두 명이 만드는데 월 매출이 피크에 4천만 원에서 5천만 원 나옵니다. 그런데 링크드인에는 토이 프로젝트라고 써뒀길래 이유를 물었습니다. 고객이 어떤 워크플로우로 쓰는지, 고객이 생각하는 경쟁자가 누구인지, 우리가 그걸 잘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아직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매출이 얼마가 나오든 토이 프로젝트로 두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간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글로벌 소프트웨어가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본인 도메인에도 한국에 유명한 솔루션이 몇 개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아무도 모릅니다. 이대로면 내수용 툴이 되겠다 싶었고 최소한 그걸 눈으로 보고 결정하고 싶어서 밥을 먹다가 표를 끊었습니다.
가서 느낀 건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인재 밀도였습니다. 본인 도메인을 제대로 하는 업체가 한국에는 열 곳이 안 되는데, 거기는 이천 곳이 있습니다. 지금 겪는 문제를 이미 겪어본 사람이 어떤 미팅을 나가든 한 명은 있다는 뜻입니다. 기차에서 앞자리 사람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봐 알려줬습니다. 알고 보니 요즘 주목받는 스타트업의 창업자였습니다.
실리콘밸리를 뭐라고 정의하겠느냐고 물었더니, 3만 명의 일론 머스크인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그게 샌프란시스코라고 답했습니다. 1퍼센트가 진짜고 99퍼센트는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재미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표를 부풀린 채 투자자를 만나는 사람이 태반이고 쇼맨십이 지나치다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같은 사업을 들고 갔는데 두 도시의 조언이 정반대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꿈이 너무 작다, 콘텐츠 마케팅 AI 1등 해서 뭐 하냐는 톤이었고 뉴욕에서는 한국에 고객이 있으면 한국에서 투자받는 게 낫지 않냐는 톤이었습니다. 현지에서 파운더 블루도 느꼈다고 합니다. X와 링크드인이 인스타그램 스토리 같아서 만나는 사람이 다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통계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하루 만에 빠져나왔습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를 물었습니다. 클로드 코드나 코덱스를 잘 쓰는 법에 대한 세션은 거의 매주 열리고 인상 깊었던 건 토큰 맥싱이었다고 했습니다. AI를 잘 쓰는 직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토큰 비용이 인건비를 넘어서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별도 세션으로 열립니다. 우리는 아직 AI를 쓸지 말지를 얘기하는 회사가 많은데 말입니다.
실용적인 조언도 받아뒀습니다. Luma에 밋업이 하루 열 개에서 열다섯 개씩 열리니 웨이팅에서 튕기기 전에 미리 신청하고 자기 도메인과 겹치는 버티컬 밋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외였던 건 네트워킹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라는 답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논네이티브가 섞여 대화하면 청해 난이도가 크게 올라가서, 최소 칠십 퍼센트는 들려야 나머지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해자를 물었더니 요즘 몇 시간씩 그것만 고민한다고 했습니다. 작은 회사인데도 한국에만 카피 프로덕트가 대여섯 개 나왔습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덕트여도 큰돈을 든 경쟁자가 들어오면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밸리에서 내린 결론은 해자라는 게 누구에게도 없다는 인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만 하는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CapEx가 들어가는 형태로, 그리고 사람과 얽히는 비즈니스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세션은 Celina Lee 님이었습니다. LA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다시 캘리포니아에서 자랐습니다. MIT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하고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2년이 안 돼 로스쿨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여기서 5년, 10년 열심히 하면 지금의 상사처럼 되는데 그게 내가 그리고 싶은 미래인가 하는 질문에 아니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뉴욕 로펌 시절에는 사모펀드 딜로 일주일간 잠을 못 자고 일한 뒤 청구서를 만들었는데 일주일치가 백만 불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신뢰를 파는 업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로펌의 평판과 파트너 변호사의 이름을 걸고 사인하는 것, 그 신뢰에 시간당 값이 매겨집니다. 지금은 리걸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전 세계 20개 도시의 고객을 코칭합니다. 경험한 업계 중 법조계가 가장 보수적이었는데 그 법조계도 AI를 정말 많이 쓰고 있고 변호사들이 AI를 잘 쓰게 도와주는 사람을 로펌이 적극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1년 차 변호사 채용이 줄었다는 자료가 나와 업계가 시끄럽다고도 했습니다.
커리어에서 방황할 때의 마인드셋을 묻는 청중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10년간 코칭하면서 좌절의 순간이 없었던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다고 했습니다. 링크드인에 안 올릴 뿐입니다.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걸 아는데 그분의 SNS를 보면 화려하니, 그 정보가 없는 대부분은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룹 코칭에서는 거절당하기 챌린지를 숙제로 내고 거절을 가장 많이 모은 사람에게 상을 줍니다. 거절의 근육을 키워야 여러 도전을 할 수 있고 그중 하나는 잘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시간은 라운드테이블이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것, 시간이 한 시간 더 생긴다면 하고 싶은 것을 물었고 여덟 개 조가 나와 공유했습니다. 바이브 코딩의 도파민에서 벗어나려 명상을 한다는 분, 웨이모를 타보고 싶어 10월 샌프란시스코 티켓을 이미 끊었다는 분, 회사에서 매일 받는 토큰 캡이 주말에도 나오니 주말에도 일하게 된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조의 발표가 마무리로 딱 좋았습니다. 알고 있지만 실행 못 한 것이 퇴사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사이드에서 재미를 좀 봐서 이번 달 말에 퇴사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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