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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Bloom

오간 이야기

Claude Bloom

Bloom의 첫 행사였습니다. 접수 며칠 만에 신청이 2,000명을 넘었고 공간 때문에 170명만 모셨는데, 노쇼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관처 문이 닫히는 밤 11시까지 건물 밖에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앤트로픽이 주최한 자리가 아니라 Bloom이 기획하고 앤트로픽이 파트너로 함께했는데, 그 독립성이 이날 대화의 솔직함을 만들었습니다.

오프닝에서 Claude 앰배서더 최훈민 님이 꺼낸 통계가 이날의 틀을 잡았습니다. 앤트로픽이 150개국 8만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다국어 질적 연구였습니다. 세계 인구의 84퍼센트는 AI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코딩에 AI를 쓰는 사람은 전 세계의 0.04퍼센트였습니다. 그만큼 앞서 있는데도 불안을 느끼는 경향은 동아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불안의 한가운데에는 AI에 기대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첫 세션 게스트는 클라이원트의 AI 엔지니어 박지민 님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일반인 개발자라고 소개하면서 대단한 커리어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구체화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가 고른 말은 취준생이 된 기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여름까지는 AI가 나를 도와서 코드를 구현한다였는데 지금은 AI가 코드를 구현하고 내가 AI를 돕는다로 뒤집혔습니다. 기획과 계획, 실행, 검증으로 이어지는 개발 사이클에서 실행이 사실상 AI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날 가장 정확한 진단은 주체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개발자가 매니저가 되어 코드를 안 짜게 되는 흐름은 자연스럽고 그렇다고 주체성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고른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블루가 아픈 지점은 그게 내가 원하지 않았던 변화라는 데 있었습니다.

엔터테크 평론가 차우진 님은 링크드인에서 Claude Blue 글에 댓글을 단 것이 인연이 되어 합류했습니다. 그는 블루의 시작점을 2월 중순으로 짚었습니다. 뭔가 바뀌고 있는데 그게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구정 연휴에는 엿새를 AI와 붙어 아침 7시까지 코딩하고 세 시간 자고 다시 시작했는데, 그러다 새벽 4시에 현타가 왔다고 합니다.

결과물은 나왔지만 커밋이 뭔지, Git이 어떻게 도는지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렸습니다. 바이브 코딩이 퍼지면서 누구나 코딩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겼고 본인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코딩 수업에 200만원을 들여 배운 것은 개발 실력이 아니라 개발자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고 했습니다. 개발자가 어떤 언어로 생각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 AI에게 정확히 지시하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박지민 님이 개발자 쪽에서 덧붙인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도메인 드리븐 디벨롭먼트나 테스트 드리븐 디벨롭먼트는 기술이라기보다 개발 철학에 가깝습니다. 프로젝트 초반에 이걸 잘 세팅하면 코드베이스의 골격이 잡히고 이후에는 살을 붙이면 됩니다. 비개발자가 바이브 코딩으로 시작하면 이 골격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돌아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삐걱거리고 최악의 경우 협업이 불가능한 구조가 됩니다.

한국은 위험 사회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 번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니 속도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어떤 학교에 못 가면 인생이 끝난다는 압박, 그 학교를 나와야 그 회사에 간다는 경로 의존이 깔린 곳에 AI라는 변수가 들어오면 기존 경로가 통째로 흔들립니다. 예로 든 것은 IMF였습니다. 당시에는 재앙이었지만 10년이 지나고 보니 기회였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학습 주기가 지금은 3년에서 5년으로 줄었습니다.

차우진 님이 동시에 돌리는 프로젝트는 뉴스레터 리서치부터 유료 커뮤니티 자동화까지 열두 개가 넘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관점의 이동이었습니다. 2월까지는 AI를 맥락을 더 잘 이해하는 검색 도구로 봤는데, 4월에는 로우 데이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습니다. 에이전트에게 20세기 초 홍콩 사람 같은 정체성을 주고 1만 시간을 학습시킨 뒤 그 에이전트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세션은 철학 유튜버이자 작가인 이충녕 님과 고려대 미디어학부에서 AI 윤리를 연구하는 신혜린 교수님이 함께했습니다. 이충녕 님은 번역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신혜린 교수님은 하루 다섯에서 여섯 시간을 AI와 보낸다고 했습니다. 둘 다 선을 긋는 지점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이충녕 님은 콘텐츠 제작 자동화만큼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충녕 님의 진단은 직설적이었습니다. 블루를 느끼는 게 AI가 나보다 똑똑해서 자존심이 상해서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제적인 이유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사회가 경제 중심으로만 돌아가면서 정치로 경제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하버마스의 정치적 무력감을 끌어왔습니다. 신혜린 교수님은 더 구체적인 장면을 꺼냈습니다. 한국의 유명 게임회사 대표가 강연에서 요즘은 AI로 다 하니 엔트리 레벨을 별로 뽑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눈에서 힘이 빠지는 걸 봤다고 했습니다.

가장 깊어진 대화는 덜 생각하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충녕 님은 우리 주변이 너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고 했습니다. 취업하면 집을 사야 하고 집을 사면 다음 스텝이 있고 모든 넥스트가 빽빽하게 설계돼 있어 멈춰 설 틈이 없습니다. 인간은 조금만 빈틈이 생겨도 그쪽으로 생각이 가는 존재인데 현대 사회가 그 빈틈을 메워버렸으니, AI가 빈틈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했습니다. 신혜린 교수님은 동기의 80퍼센트가 대학에 가는 사회에서 그걸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덧붙이면서 인간이 가장 우월한 자리를 잃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이 모델들과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가치에 맞게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가 고민할 지점이라고 했습니다.

AI 편향성을 묻는 청중 질문에 신혜린 교수님은 지금 쓰는 모델에 깔린 편향은 오래 누적된 것이라 한 번에 풀릴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여러 분야가 함께 담론을 이어가며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면서 지금은 AI 윤리의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판은 커지는데 관심과 투자는 줄어드는 시기라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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