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없이 미국 법인 만들지 마세요
오간 이야기

신청서에 181분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절반이 넘는 51퍼센트가 대표와 C레벨, 파트너였습니다. 이미 해외에서 매출이 나오고 있다는 곳이 36퍼센트, 나갈 시장 1순위로 미국과 북미를 꼽은 분이 56퍼센트였습니다. 해외 결제와 송금에서 어디가 막히는지 하나만 고르게 했더니 규제와 서류, 세무가 30표로 가장 많았고 해외 계좌와 법인 개설 자체가 26표였습니다.
첫 세션은 Peter Shin 님이었습니다. QueryPie를 공동 창업해 YC W20에 들어갔고 500 Global에서 4년간 한국 프로그램을 총괄하다 작년 7월 액셀러레이터 Outsome을 차렸습니다. 올해 초 화상 커피챗에서 들었던 말을 다시 꺼내 물었습니다. 수단을 팔지 말고 목적을 팔라는 게 무슨 뜻이었는지. 답은 아이폰이었습니다. 우리는 타이타늄 섀시에 들어간 CPU 덩어리를 사는 게 아닙니다.
한국 창업자가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으로 그가 꼽은 건 기술이 아니라 자기 검열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시리즈 A까지 갔다면 미국 기준으로는 시리즈 D나 IPO에 가까운 난이도를 이미 통과한 것입니다. 양궁 전국체전이 올림픽보다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 난이도를 그대로 들고 실리콘밸리로 가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차익 거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못 나갑니다. 완벽한 제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서입니다.
그 집착을 놓지 못한 채 건너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부 지원금에 자기 돈까지 태워서 넘어가 놓고 현지 VC를 만나기 전날 밤에 코드 리뷰와 QA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로 가는 팀에게 주는 지표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스탠포드 같은 데 가서 친구 한 명만 사귀어 오라는 것. 머리를 핑크색이나 노란색으로 염색해서라도 뭐 하나는 기억에 남게 하라고 했습니다.
Outsome이라는 이름은 Outliers build something에서 왔습니다. YC에 붙기 전 한국의 모든 투자사를 돌았지만 전부 거절당했습니다. YC가 인정해준 다음에야 국내 대형 핀테크사 세일즈가 열리고 VC들이 줄을 섰습니다. YC 자체도 아웃라이어였다고 했습니다. Continuity Fund로 후속 투자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Sequoia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VC들이 대놓고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아웃라이어들이 만들어서 교과서를 쓰는 곳이 실리콘밸리이니, 한국에서 왕따라면 본향은 실리콘밸리라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설문을 돌리는 대신 돈이 들어오는지를 보라는 말을 그는 여러 번 했습니다. 가장 좋은 설문조사는 입금이라는 것입니다. 제품이 아직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올해 YC 기수 여섯 곳 중 한 곳이 services company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코딩이 쉬워진 지금은 업계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이 인터뷰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 자체가 제품력의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타깃은 회사 단위에서 멈추지 말고 직책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미국 헬스케어가 아니라, 당뇨 신약의 보험 수가를 책정하는 보험사의 어느 직책인지까지 적어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게 신뢰의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전제를 뒤집었습니다. 한국은 동질적이라 외국에서 온 사람이 단번에 보입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억양만으로는 시민권자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묻지 않으면 한국에서 왔다고 언제 돌아간다고 먼저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곧 돌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는 자기 문제를 털어놓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웹사이트 하단에 봉은사로 주소를 한글로 박아두지 말라는 조언도 붙었습니다.
법인은 언제 만드느냐는 질문에는 기준이 명확했습니다. 계약이 체결되고 한국 계좌로 3,000달러든 5,000달러든 실제로 받아봤고 그런 구매가 다른 데서도 일어날 것 같을 때입니다. 델라웨어 법인을 만드는 순간부터 프랜차이즈세와 주 세금 신고가 붙고 현지 세무사 비용만 연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이 나갑니다. 매출이 나지도 않는데 미국 법인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는 게 그의 말이었습니다. 객석에서는 에이전트 커머스로 트랙션을 냈는데 결제 약관에 걸렸다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실리콘밸리 VC들이 좋아하는 프레임워크가 hacking the system이라면서도, 배리어를 뚫고 반복 구매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왜 샀는지 밝혀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메인 세션은 Airwallex의 권윤아 님이었습니다. BCG에서 4년 10개월, Shopee에서 7년 9개월 동안 한국과 일본의 크로스보더 사업을 맡았고 올해 5월 Airwallex에 합류했습니다. 커리어를 고르는 기준이 일관됐습니다. 무에서 하나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생존에는 위협을 받고 싶지 않아서 돈이 많은 회사에서 이제 갓 시작하는 사업부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Airwallex의 시작은 2015년 멜버른의 카페였습니다. 원두를 해외에서 사 오는데 은행 송금 속도가 재고가 떨어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기업가치 17조 원, 연간 처리액 440조 원입니다.
Shopee 시절 한국과 일본을 함께 보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일본은 잘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 게 중요한 시장이라고 했습니다. 실수를 안 하고 반품을 일으키지 않는 데 집중하는 반면, 매출을 키우는 투자에는 보수적입니다. 숫자로도 드러납니다. 크로스보더 거래에서 중소기업 비중이 일본은 5퍼센트, 한국은 20퍼센트입니다. 한국 셀러가 5년 만에 40배 성장한 배경도 물었습니다. 수요도 공급도 있었는데 중간 다리인 물류가 막혀 있었다는 게 답이었습니다. 건당 2만 원짜리 EMS와 5억 원어치 아마존 재고 사이에 중간 단계가 생기자 숫자가 한 번에 뛰었습니다.
계좌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질문에 답이 명확했습니다. 금융에서 해외 사업자가 되는 순간 환전 비용과 송금 시간이라는 페널티를 받습니다. 환전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필요할까요. 계산이 나왔습니다. 강제 환전이 없어서 생기는 절감이 왕복 4퍼센트에서 5퍼센트이니, 역산하면 월 500만 원에서 600만 원의 거래 규모가 손익분기입니다.
해외 법인을 꼭 만들어야 쓸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지금은 싱가포르나 미국 법인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범위가 넓습니다. 내년부터는 한국 법인만으로 해외에서 직접 결제를 받을 수 있게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해외 법인은 안 만들어도 되면 안 만드는 게 좋다는 말은 앞서 Peter Shin 님의 결론과 같았습니다. 나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해외 사업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현지 사업자인 척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가장 최근에 해외를 다녀온 사람이 조장을 맡았습니다. 딜 클로징이 안 된다는 고민이 여러 테이블에서 겹쳤는데, 한 조는 한국의 공손함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동한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면전에서 안 될 것 같다고 말하지 않으니 다 좋다고 해놓고 계약이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학생 입국 행정을 자동화하는 조장은 전날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 일곱 곳과 계약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자기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현지 부주지사의 소개 덕분이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구매한 것은 제품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법인 설립 시점을 놓고 토론한 조는 두 세션의 결론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매출이 나기 전에는 세울 때가 아닙니다.
원문 보기행사 영상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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